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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마트에서 울다 - 미셸 자우너 작가 (음식과 엄마, 그리고 나)

▶ 제목 : H마트에서 울다
▶ 작가 : 미셸 (정미) 자우너
▶ 출판 : 문학동네
▶ 초판 : 2022.02.28
▶ 장르 : 자전적 에세이 / 엄마의 추모이야기 / 예술가의 성장기 / 음식(특히 한식)의 이야기 / 가슴이 먹먹함
▶ 기타 : 페이지 407쪽 / 무게 455g / 크기 140 x 200 x 23 (mm)
▶ 읽기 : 췌장암으로 떠나보낸 엄마를 추억하며, 자신의 얘기를 담담히 때론 과감히, 자세히 묘사한다.

 

출처 : 출판사 (문학동네) 북카드 중 2장 가져옴

 

출판사 책소개 (알라딘 참고) 내용 중 일부 발췌
☞ 내용 중 주요부분 [색상 & 볼드] 처리했습니다.

 

엄마 생각에 눈물부터 나오는 곳, H마트
이 책은 한 편의 절절한 에세이에서 시작되었다. 미셸 자우너가 한인 마트에서 장을 보며 엄마를 향한 추억과 그리움을 쓴 글 「H마트에서 울다」가 『뉴요커』에 실리자마자 수많은 독자의 반향을 불러일으킨 것. H마트는 미국에서 아시아 식재료를 전문으로 파는 대형 식료품 할인점으로, H는 ‘한아름’의 줄임말이다. ‘두 팔로 감싸안을 만큼의 크기’라는 의미처럼 그곳에는 만두피, 김, 뻥튀기, 죠리퐁, 갖가지 밑반찬 등 없는 한국 먹거리가 없다. 
엄마를 잃고 찾아간 그곳에서, 자우너는 딸과 함께 해물짬뽕을 먹는 할머니를 보고 울컥한다. H마트에서, 엄마는 어디에나 있다. 비빔밥에 고추장 많이 넣지 말라던 엄마의 잔소리도, 달콤한 짱구 과자를 손가락에 끼고 흔들던 엄마의 모습도, 엄마와 내가 조금씩 베어물던 동그란 뻥튀기의 추억도 이곳에선 생생하기만 하다. 그렇게 H마트에서 자우너는 엄마가 미각에 강렬하게 새긴 맛을 되찾으며 위안을 얻고 회복해나간다.

 

지극히 주관적인 감상평

 

언젠가부터 외국에서 활동하는 한국계 작가들의 책들이, 한국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크고 작은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이민진 작가의 <파친코>가 그랬고, 김주혜 작가의 <작은 땅의 야수들> 이 뒤를 이으며 비슷한 배경의 다른 매력을 선사해 줬다.

 

거의 비슷한 기간에 읽었던 한국 작가인 최은영 님의 <밝은 밤> 까지. 3개의 작품들을 최근 1~2년 사이에 읽으며 마음 속에는 일종의 '폴더' 가 하나 생성되는 느낌이 들었다. 현대적 감각으로 풀어쓴 옛날 이야기 폴더가. 십수년 전, 조정래 작가의 <아리랑>, <태백산맥> 으로 느꼈던 그 시절들이, 이민진, 김주혜, 최은영 작가가 창조해낸 젋은(?) 등장인물들로 그 시절이 재창조됨을.

 

서두의 방향을 다시 돌려서, <H마트에서 울다>의 - 엄마가 한국인, 아빠가 미국인인 - 작가를 처음 마주하며 위의 '폴더' 를 떠올렸었다. "제발 나의 폴더에 들어가줘~~~" 라고. 하지만 몇 페이지 읽고 나서 바로 수정을 했다. '엄마'를 그리며 쓴 에세이였다. 엄마가 췌장암으로 돌아가신. 아...이건 너무 반칙이 아닌가. 주로 아침 출퇴근 시간에 책을 펼치는데, 만원 지하철에서 눈물이 터지면 어쩌라는건가. 실제로.... 그랬다. 정말 그랬다. 눈물이 차 올라 괜히 2호선 창 밖을 바라보며 몇 번이나 눈물을 식혔었는지. 

 

피터와 내가 여행 다닌 장소는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에 가고 싶어한 곳이었다. 우리의 마지막 여행이 병원 격리 생활로 변해버리기 전에 엄마가 나를 데려가려 한 곳이었다. 엄마가 나와 함께 만들려던 마지막 추억이고, 엄마가 나를 키우며 내가 사랑하도록 만든 것의 원천이고, 내가 기억했으면 하는 맛이고, 내가 절대 잊지 않았으면 하는 감정이었다. --- 345면

 

엄마의 자취를 따라 신혼여행을 하던 중, 제주도 장면에서 나오는 문장이다. 어떤 감정일까 감히 상상이 안 간다. 몇년 전 해외 출장 중 친한 회사 선배의 모친상을 듣게 되었다. 회사 출장중이라 참석할 순 없는 상황인지라, 지인에게 부의금은 부탁했고 그래도 죄송스런 마음에 위로의 글을 간단히 메일로 남겨드렸던 적이 있었다. 그러고 1주일 후 아마도 정해진 경조휴가를 마치고 돌아오신 선배로부터 회신 메일이 들어왔다. 그런데 그 중 한 문장이 아직도 뇌리에 강하게 박혀있다. 처음엔 연락해줘 고맙다 등등의 안부인사가 이어지다, 말미에 추스르기가 너무 버겁다. "엄마란 그런 존재잖아" 라고 끝맺음을 했었다. "엄마는 그런 존재잖아" 맞네, "엄마는 나에게도 그런 존재구나" 그날 이역만리 출장지에서 수십번 도 더 혼자 되뇌었었다. 퇴근 후 한국에 전화드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시차가 정반대라 너무 이른 시간에 전화를 드리면 해외 출장 중 무슨 일이 났을까봐 가슴 덜컹거리시는 평소 걱정많으신 성격 때문에 바로 전화 못 드리고, "별 일 없으시죠" 그냥 카톡 한 줄 무심히 남겨놓은 일이 지금에 와서 후회가 된다. 

 

글을 쓰다 보니, 너무 울적한 마음이 드는데...앞으로 더 잘해야지 다짐하며, 분위기 전환을 한 번 해 볼까 한다.

 

나는 행복한 마음으로 손바닥을 쫙 펴서 거기에 상추 한 장을 올려놓고 내 식대로 음식을 착착 쌓았다. 윤기가 좌르르 흐르는 갈비 한 조각, 따끈한 밥 한 숟가락, 쌈장 약간, 얇게 저민 생마늘 한 조각을 차례차례로. 그런 다음 그걸 얌전하게 오므려 입에 쏙 집어넣고는 눈을 감고 우적우적 씹으면서 맛을 음미했다. 몇 달 동안 집밥에 굶주린 내 혀와 위는 그제야 깊은 만족감을 되찾았다. 밥 자체만으로도 경이로운 재회였다. 밥솥에서 고슬고슬하게 지은 밥은 밥알 하나하나가 살아 있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내가 기숙사에서 생존을 위해 먹던 찐득한 즉석밥과는 차원이 달랐다. --- 123면

 

이 대목을 읽으며, 누가 떠올랐는지 아는가? 무려 '이영자' 님이다. 이영자 님이 침을 꼴깍 삼키며 음식에 대한, 그리고 먹는방식에 대해 설명할 때의 진지함. 그게 느껴졌다. 작가는 분명 영어로 썼을텐데 책을 번역하신 정혜윤 님에게 박수를 드리고 싶다. 

 

더 놀라운 건, 위와 같이 음식에 관한 표현들이 도처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우리는 검푸른 어둠에 싸인 꿉꿉한 부엌 싱크대 앞에 서서 갖가지 반찬이 꽉꽉 들어찬 터퍼웨어 통을 모조리 열고 함께 그것들을 집어먹었다. 밥솥 뚜껑을 열어놓고 그 자리에서 뜨끈뜨끈한 보라색 콩밥을 한 숟가락 가득 입에 퍼 넣고, 달콤하게 조린 검정콩, 파와 참기름을 넣고 아삭하게 무친 콩나물, 한입 베어 물면 시큼한 즙이 입안 가득 퍼지는 오이김치를 번갈아가며 정신없이 퍼먹었다....(중략).....간장게장을 손으로 집어먹었다. 토실토실한 생게 다리를 쪽쪽 빨았다가 혀끝을 껍질 사이로 밀어넣었다 하면서 짭조름하고 몽글몽글한 살을 발라먹는 틈틈이 손가락에 묻은 간장을 핥아먹었다. --- 51면

 

분명 읽고 있는데, 오감이 느껴지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는 것 같다. 마지막으로 맛에 관한 표현 하나만 더 소개해 보겠다. 사실 "잣죽" 이 우리가 아플 때 흔히 먹던 "미움" 과 약간 헷갈리긴 한다. 저 대목을 읽으며 헷갈리는 나 자신을 약간 질책해봤던 장면으로 기억한다. (^^;;)

 

"잣죽은 모든 죽의 여왕이라 할 수 있습니다! (...) 얼핏 수프처럼 보이지만 후루룩 마시지 말고 숟가락으로 한입 한입 떠먹으세요. 뒷맛을 제대로 느끼실 수 있도록. 일단 한입 떠먹고 나면 잠깐 멈추세요. 그리고 영상 속의 저처럼 눈을 감고 맛을 음미해 보세요. 음 맛있어. 음 맛있어, 하면서요. 그리고 또 한입 떠서 드세요! 아마 하하하 하고 웃음이 절로 날 거에요." --- 317면 

 

이 대목을 보며 곧 본죽 가서 꼭 '잣죽'을 시켜 먹어야지 다짐했던 것도 기억이 난다. (^^;; 2탄)

이제 다시 엄마 이야기로 넘어가 볼까 한다. 

 

˝괜찮아, 괜찮아.˝ 엄마가 말했다.
내게 너무도 익숙한 한국말. 내가 평생 들어온 그 다정한속삭임. 어떤 아픔도 결국은 다 지나갈 거라고 내게 장담하는말. 엄마는 죽어가면서도 나를 위로했다. 엄마의 모성이, 엄마가 느꼈을 테지만 능숙하게 숨겼을 무진장한 공포를 제압해버린 것이다. 엄마는 무슨 일이든 어찌어찌 잘 풀릴 거라고 내게 말해줄 수 있는, 세상에서 유일한 사람이었다. 난파선이 소용돌이 속으로 사라져 보이지 않을 때까지 담담히 지켜보고 있는 태풍의 눈과도 같았다. --- 203면

 

어렸을 때, 어떤 일로 힘들어 하거나 두려움이 앞설때 항상 엄마 치마폭에 포옥 안겨 있으면 엄마가 등을 토닥거리며 "괜찮아 괜찮아, 잘 될꺼야" 해 주던 말이 떠오른다. 시간이 흘러 이젠 두 아이의 아빠가 되어 있는 나. 아직 한창 성장하고 있는 두 아이는 어린 시절의 나처럼 소심하고 겁이 많다. 항상 주저하고. 그럴 때면 이젠 내가 과거의 엄마가 되어, 아이들을 꼬옥 안아준 채 어깨며 등을 토닥여 주고 있다. "괜찮아. 괜찮아. 잘 될꺼야" 를 마법의 주문처럼 되뇌면서. 

 

그날 밤 엄마 옆에 누워 있으려니 어렸을 때 차가운 발을 녹이려고 엄마 넓적다리 사이에 슬며시 발을 끼워넣던 일이 떠올랐다. 엄마는 부르르 떨면서 속삭였다. 널 편안하게 해줄 수만 있다면 엄마는 어떤 고통도 감수할 거라고, 그게 바로 상대가 너를 진짜 사랑하는지를 알 수 있는 방법이라고 그 부츠가 떠올랐다. 내가 발이 까지지 않고 편안하게 신을 수 있도록 엄마가 미리 신어 길들여 놓은 부츠가. 나는 이제 어느 때보다도 간절히 바랐다. 부디 내가 대신 고통받을 방법이 있기를, 내가얼마나 엄마를 사랑하는지 엄마에게 증명할 수 있기를, 엄마의 병상에 기어들어가 엄마에게 바짝 몸을 밀착시키기만 하면 그 무거운 짐을 내가 송두리째 흡수해버릴 수 있기를. --- 149~150면

 

자식에서 부모가 되어 보니, 저 대목의 "엄마"의 마음을 알 것 같다. 역시 엄마는 위대하다.

이제 슬슬 마무리를 해 볼까 한다. 책을 보며, 음식/엄마에 대한 이해 (작가는 청소년 시절 심각한 사춘기로 엄마와 거의 등을 지다시피 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등등 내용이 많았는데, 가장 울림이 컸던 문장은 아래였다.

 

엄마는 나의 대리인이자 기록 보관소였다. 엄마는 내 존재와 성장 과정의 증거를 보존하려 갖은 노력을 기울였다. 내 모습을 순간순간 포착하고, 내 기록과 소유물을 하나하나 다 보관해두면서, 엄마는 나의 모든 걸 기억하고 있었다. 내가 태어난 때, 결실을 맺지 못한 열망, 처음으로 읽은 책, 나의 모든 개성이 생겨난 과정, 온갖 불안과 작은 승리, 엄마는 비할 데 없는 관심으로 지칠 줄 모르고 헌신하면서 나를 지켜보았다.
엄마가 사라지고 나니 이런 것들을 물어볼 사람이 아무도없었다. 기록되지 않은 일은 엄마와 함께 죽어버렸으니까 한낱 기록과 내 기억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이제 엄마가 남긴 표식을 단서로 나 자신을 이해하는 일은 오롯이 내 숙제가 되었다. 이 얼마나 돌고 도는 인생인지, 또 얼마나 달콤쌉싸름한 일인지. 자식이 엄마의 발자취를 더듬는 일이, 한 주체가 과거로 돌아가 자신의 기록 보관인을 기록하는 일이. --- 371~372면

 

항상 이런 생각을 해 본다. 내가 나를 기억하는 물리적인 시간보다, 엄마가 나를 봐 왔던 시간이 더 많겠구나. 라고. 나는 7살 이전에는 홀라당 기억이 없다. 엄마는 그 때에도 나를 위해 무언가를 해 주셨을 테니깐. 

 

이젠 내가 같은 역할을 하며, 나의 아이들을 위해 하나씩 하나씩 쌓아가는 기록보관소가 되야지...